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2년 동안 국회에 법안 20,770건이 올라왔고, 그중 1,481건이 실제로 법이 됐다. 뉴스에 나온 법안이 아니라,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곧 시행될 법 전부다. 그 1,481건이 스스로 밝힌 이유를 한 건도 빼지 않고 읽었다.
읽은 뒤 알게 된 것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숫자보다 조문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무엇을 새로 금지했고, 누구를 보호하기로 했고, 무엇 앞에서 규칙을 치워줬는지는 건수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의 앞쪽은 국가가 실제로 한 일이고, 뒤쪽은 왜 하필 이런 모양인가다.
국가가 실제로 한 일
법 하나는 대개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기면 어떻게 된다.” 2년치를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그 문장들이 줄기를 만든다. 아래 열두 개가 이 2년의 줄기다.
국가가 자기 수사권을 분해해서 다시 조립했다
2024년 12월 3일 밤의 비상계엄은 두 가지를 남겼다. 하나는 탄핵이고, 다른 하나는 법 더미다. 2년치 법을 시간 순으로 늘어놓으면 이 흐름이 가장 굵다.
- 2025.06.10특별검사 임명법 세 개가 같은 날 만들어졌다내란·외환 사건, 김건희·명태균 사건, 순직 해병 수사 방해 사건. 각각 별도의 법이다.
- 2025.09.26그 세 법을 같은 날 한꺼번에 키웠다특검에 붙는 파견검사를 70명까지 늘리고, 1심 재판을 의무적으로 중계하도록 했다.
- 2025.10.01검찰청을 폐지하는 정부조직 개편이 통과됐다기획재정부를 나누고 기후에너지환경부를 만드는 개편과 한 법에 담겼다. 이 법을 낸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회 위원회였다.
- 2026.01.06내란 사건 전담재판부를 만들고, 사면을 제한했다제보자 보호 조항도 함께 들어갔다.
- 2026.01.27네 번째 특별검사법
- 2026.02.05군 방첩사령부에서 수사권을 회수했다내란·외환 수사권을 군사경찰로 넘겼다. 계엄에 동원된 기관에서 권한을 떼어낸 것이다.
- 2026.03.12판사와 검사를 처벌하는 죄가 새로 생겼다법을 왜곡해 재판하거나 수사하면 형사처벌한다. ‘법왜곡죄’다. 부담을 지는 쪽이 법관과 검사인 형법 조항은 이 2년에 처음 등장했다.
- 2026.03.24검찰청이 법적으로 사라졌다기소를 담당하는 공소청과, 수사를 담당하는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쪼갰다. 검사를 파면할 수 있는 제도도 함께 들어갔다. 시행일은 2026년 10월 2일이다.
- 2026.07.21특검 수사기간을 두 차례 더 연장할 수 있게 했다
- 2026.08.04검사의 직접수사권이 폐지됐다수사의 주체를 경찰로 일원화하고, 검사는 기소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같은 날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조사하는 아홉 번째 특검법도 만들어졌다.
- 2026.09.08새로 만든 수사청장을 국회 인사청문 대상에 넣었다
이것을 “검찰 개혁”이라는 한 단어로 부르면 놓치는 것이 있다. 2년 사이에 수사할 기관, 기소할 기관, 그 둘을 감시할 기관, 그리고 잘못한 판사·검사를 처벌할 조항이 전부 새로 정해졌다. 형사사법의 배선을 통째로 다시 깐 것이다.
특별검사도 함께 봐야 한다. 특검은 원래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회가 법을 하나 만들어 임시로 세우는 기구다. 그런데 2년 동안 특검법이 아홉 번 만들어지고 고쳐졌다. 세 개를 같은 날 만들고, 석 달 뒤 세 개를 같은 날 확대하고, 이후로도 계속 늘렸다. 임시 기구를 반복해서 세우는 일이 일상적인 절차가 됐다.
계엄 자체를 겨눈 법도 따로 있다. 국무회의 회의록을 반드시 작성해 국회에 내도록 했고, 계엄 중에 군인이나 경찰이 국회 안에 들어가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방해하면 5년 이하다.
국가가 이 2년에 가장 공들여 고친 것은 경제도 복지도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의 배치였다.
형법이 계속 늘어났다. 새 범죄가 생기고 형량이 올랐다
같은 2년, 처벌의 목록도 길어졌다. 없던 죄가 생기고, 있던 죄의 형량이 올랐다.
| 새로 만든 죄 / 올린 형량 | 내용 |
|---|---|
| 공중협박죄 (신설) | 불특정 다수를 향해 협박하면 5년 이하 징역. ‘살인 예고 글’ 같은 것을 겨눈다 |
| 흉기소지 공포유발죄 (신설) | 흉기를 들고 배회해 공포를 유발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 |
| 법왜곡죄 (신설) | 판사·검사가 법을 왜곡해 재판·수사한 경우 |
| 사기죄 | 법정형 상한을 10년에서 20년으로 두 배 |
| 임금체불 | 법정형 상한을 5년으로 올림 |
| 간첩죄 | 적국에 한정됐던 대상을 외국 전반으로 확대 |
가장 집중적으로 조인 영역은 디지털 성범죄다. 2년 동안 여섯 건이 같은 방향으로 쌓였다.
- 2024.10.16딥페이크 법정형을 올리고, 소지와 시청까지 처벌 대상에 넣었다
- 2024.12.03수사관이 신분을 위장해 수사하는 방식을 성인 피해 사건까지 확대
- 2024.12.20범죄로 번 돈을 반드시 몰수하도록 했다‘할 수 있다’에서 ‘해야 한다’로 바꿨다. 피해자에게 삭제 요청권도 줬다.
- 2025.01.31학교 사이버폭력의 정의에 딥페이크를 넣었다
- 2025.11.11형사재판에서 바로 배상을 명령할 수 있는 범위를 디지털 성범죄 전반으로 확대
- 2026.05.12전자장치를 찬 성범죄자에게 일대일 전담 보호관찰관을 붙이는 범위를 넓혔다
스토킹도 세 번 조였다. 피부착자가 접근하면 피해자에게 직접 통지하도록 하고, 피해자가 스스로 보호명령을 신청할 수 있게 하고, 현장조사를 방해하면 과태료가 아니라 형벌을 매기도록 바꿨다.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더 있다. 친족 사이의 재산 범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규정이 피해자가 고소하면 처벌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국가가 개입하지 않던 영역이 줄어든 것이다.
반대 방향은 두 건뿐이다. 위헌 결정에 따라 밀수 예비행위의 형을 감경한 것, 그리고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수사에 협조하면 형을 깎아주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후자는 처벌을 줄이려는 게 아니라 윗선을 잡으려는 수단이다.
일하다 돈을 못 받는 것을 네 번에 걸쳐 조였다
노동 분야에서 가장 뚜렷한 것은 하나다. 임금체불이다. 2년 동안 네 번, 다른 법으로 같은 방향으로 갔다.
- 2024.10.22상습 체불 사업주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신용제재·출국금지돈을 안 준 사업주의 신용을 깎고, 나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 2025.11.11퇴직금 체불에서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뺐다합의를 압박해 형사처벌을 피하는 경로를 막았다.
- 2026.03.17퇴직급여 체불의 법정형을 올렸다
- 2026.04.07임금체불 법정형 상한을 5년으로 올리고, 공공 발주자에게도 책임을 물렸다
같은 기간 도산한 회사의 체불 임금을 국가가 대신 주는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었다. 하도급 구조에서는 원청과 상위 수급인에게까지 회수 책임이 붙었다.
죽거나 다치는 쪽도 함께 조였다
폭염과 한파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사업주의 의무가 법률에 직접 들어갔다. 최근 5년간 온열질환 재해자 115명, 사망 12명이라는 통계가 그 법의 이유로 적혀 있다.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매기고, 안전보건 현황을 공시하도록 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은 산재보험료를 다시 계산한다. 노동감독관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정한 법도 새로 만들어졌다.
외국인 노동자는 ‘관리’와 ‘보호’가 같이 왔다
계절노동자를 데려오는 절차에 법적 근거가 생기고, 허가 없이 알선하면 처벌한다. 농어업 경영체는 표준계약서를 쓰고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것이 금지됐다. 반대편에는 외국인 인적정보를 모으는 시스템, 보호(사실상 구금) 기간 상한 20개월, 방위산업체 외국인 임원 승인제가 있다. 노동력으로는 제도 안에 넣고, 안보 영역에서는 밀어냈다.
그런데 노동시간은 반대로 갔다
임금과 안전은 조였지만 일하는 시간의 총량은 그대로거나 열렸다. 택시 운전기사의 주 40시간 규정에 40%까지 예외를 허용했고, 이 법에서 부담을 지는 쪽은 사업자가 아니라 운수종사자 본인이다. 노동조합 쪽에서는 쟁의행위 손해배상 책임을 개인별로 나누고 감면할 수 있게 하는 법이 통과됐다.
국가는 “못 받은 돈”과 “다치는 몸”은 강하게 다뤘고, “일하는 시간”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인구 문제를 ‘휴가와 수당’으로 번역했다
인구 감소는 이 2년에 가장 자주 언급된 이유였다. 그래서 국가가 실제로 만든 조문을 모아보면, 답의 형태가 뚜렷하다. 거의 전부가 휴가·급여·수당이다.
| 시점 | 실제로 바뀐 것 |
|---|---|
| 2024.10 | 배우자 출산휴가를 20일로 늘리고, 휴가 급여를 전체 기간으로 확대. 육아휴직 기간도 확대 |
| 2025.01 | 영유아를 동반한 가정을 위한 전용 주차구획 근거 |
| 2026.02 | 육아휴직 급여의 최소 단위를 7일로 줄임 — 짧게 끊어 쓸 수 있게 |
| 2026.03 |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13세 미만까지 단계적으로 올림 |
| 2026.03 | 배우자의 유산·사산에도 휴가 급여를 지급 |
| 2026.05 | 난임치료휴가 급여를 2일에서 4일로 |
| 2026.06 | 공무원 육아휴직을 자녀 12세까지로 확대하고 난임휴직을 신설 |
| 2026.06 | 연차를 시간 단위로 청구할 권리 |
여기에 기구 하나가 더해졌다. 2026년 6월, 인구 정책을 다루는 법이 인구전략기본법으로 전면 개편되면서 인구전략위원회가 중앙부처와 예산을 미리 협의할 권한을 갖게 됐다. 부처 예산에 개입할 수 있는 위원회는 흔치 않다.
지방에는 다른 방식이 갔다. ‘인구감소지역’에 이어 ‘인구감소관심지역’이라는 범주가 새로 생기고, 여기에 용적률 특례, 지방교부세 지원, 농어촌 유학, 공유지 대부, 빈집 정비 감면이 붙었다. 지역사랑상품권에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의무가 됐다.
반대로, 손대지 않은 것
목록을 다 읽고 나면 빠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 집값, 노동시간의 총량, 사교육.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늘 지목되는 세 가지에 대해, 이 2년의 법은 인구를 이유로 들며 접근한 적이 거의 없다. 주거 쪽에서 인구를 근거로 나온 것은 은퇴자마을 특별법, 빈집 정비 지원, 미분양 주택 취득에 대한 지방세 감면이었다.
세금 쪽에는 혼인 세액공제가 신설됐다. 결혼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이다.
국가는 인구 문제를 노동법과 복지제도의 문제로 번역했다. 그 번역이 맞는지가 앞으로의 질문이다.
기후 대응은 사실상 ‘건설 특별법’의 다른 이름이 됐다
기후 관련 법은 두 갈래로 갈린다. 그리고 두 갈래가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못 지키면 다시 세워라
인허가를 한 번에
즉 감시와 계획은 정부 기관에 걸고, 실제 건설은 특별법으로 절차를 걷어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절차가 걷힐 때 부담은 누군가에게 간다. 전력망 특별법에서 부담을 지는 쪽으로 기록된 것은 송전선로 주변 주민이다.
실제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쪽을 겨눈 법도 있다. 배출권 무상 할당 비율을 법으로 정하고, 배출권 시세를 조작하면 처벌하도록 했다. 폭염·한파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는 앞의 3장에 나온 그 조항이다. 농업에는 탄소중립 선택직불금이 붙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국가는 기후를 줄여야 할 배출량보다 깔아야 할 설비로 다뤘다. 전력망, 해상풍력, 원자로, 데이터센터, 수소, 녹색항로 — 이 2년에 기후를 이유로 만들어진 법의 상당수는 에너지 인프라를 빨리 짓기 위한 법이다.
AI는 20개월 만에 규제 대상에서 산업으로 옮겨갔다
이 흐름은 순서를 그대로 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 2025.01.21AI 기본법이 만들어졌다 — 사업자에게 의무를 지우는 법으로영향이 큰 분야의 AI와 생성형 AI에 설명·표시 의무를 부과했다. 이 법에서 부담을 지는 쪽은 인공지능 사업자다.
- 2026.01.20같은 법이 개정되며 ‘지원’이 늘었다취약계층 지원을 넓히고 전략위원회를 개편했다.
- 2026.02.27공공기관이 AI로 행정을 처리할 근거와 영향평가 의무
- 2026.05~06사람을 속이는 AI는 네 개 법에서 금지됐다AI로 만든 가짜 전문가 추천 광고를 화장품·식품·의료기기·약국 영역에서 각각 금지하고 처벌한다.
- 2026.06.09AI 데이터센터는 인허가를 일괄 처리하고,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했다
- 2026.09.08이미 수집한 개인정보를 AI 개발에 쓸 수 있는 길이 처음 열렸다익명·가명 처리로는 개발이 어렵고, 공익성이 있고, 안전장치를 갖춘 경우에 한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면 가능하다. 위험 평가와 사후 점검이 조건으로 붙었다. 이 법에서 부담을 지는 쪽으로 기록된 것은 정보주체, 즉 그 정보의 당사자다.
마지막 항목의 날짜를 보면 좋겠다. 2026년 9월 8일, 이 조사가 다룬 마지막 공포일이다. 20개월 전 AI 사업자에게 의무를 지우며 시작한 흐름이,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예외를 만드는 데까지 왔다. 조건이 여러 겹 붙어 있으므로 “보호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다만 방향이 바뀐 지점은 분명하다.
한편 사람을 직접 해치는 AI에는 계속 강하게 갔다. 2장의 딥페이크 여섯 건이 그것이고, AI 가짜 광고 금지 네 건도 같은 성격이다. 둘을 합치면 규칙은 이렇게 읽힌다.
개인을 속이거나 해치는 AI는 처벌한다. 산업으로서의 AI에는 전기와 데이터를 대준다.
국가는 피해자 명단을 법으로 만든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책임을 인정했다
이 2년에 반복된 형식이 하나 있다.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만을 위한 법을 하나 만든다.
- 2024.12.03천안함 피해구제 특별법생존 장병과 유족을 지원하고, 왜곡·허위사실 유포에 대응한다.
- 2025.01.07여순사건 — 신고·조사 기간을 연장하고 특별재심을 신설
- 2025.04.2912·29 여객기 참사 특별법피해 구제와 추모를 위한 별도 법이다.
- 2025.10.28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특별법
- 2026.01.21합동재난피해자지원센터를 만들고, 피해자 회복 실태조사를 제도화참사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일을 줄이려는 시도다.
- 2026.02.05과거사 진상규명 제3기 위원회가 출범하고,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배제했다
- 2026.02.1010·29 참사 — 2차 가해를 처벌 대상으로 만들었다치유휴직을 연장하고 트라우마센터를 뒀다. 피해자를 향한 온라인 공격을 국가가 처벌하는 형태다.
- 2026.04.07가습기살균제 — 국가의 배상 책임을 법으로 인정하고, 장기 소멸시효를 폐지했다“시간이 지나서 청구할 수 없다”는 방어를 국가가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전세사기도 같은 형식으로 갔다. 특별법을 만든 뒤 세 번 고쳤다 — 보증금 인정 한도를 5억으로 올리고, 유효기간을 2년 연장하고, 2026년에는 최소보장금 제도를 새로 넣었다. 그 사이 임차인 쪽 조문도 늘었다. 집주인 동의 없이 보증 이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상습적으로 돈을 안 갚는 임대인의 집을 보증기관이 공매할 수 있게 됐다. 사기죄 형량이 20년으로 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방식에는 대가가 있다. 참사 특별법 여섯 개는 조문 구조가 거의 같다. 즉 매번 비슷한 법을 새로 쓴다. 2026년 1월의 합동지원센터 법은 그 반복을 줄이려는 첫 시도로 읽힌다.
국가는 위험을 미리 없애는 방식보다, 사고가 난 뒤 피해자 명단을 법에 적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러다 2026년에 처음으로, 자기 잘못에 대한 배상 책임을 스스로 법에 적었다.
돈의 방향은 두 번 갈라진다. 회사 안에서, 그리고 세금에서
회사 안에서는 대주주를 겨눴다 — 세 번 연속으로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법이 2년 동안 세 차례, 모두 같은 방향으로 통과됐다. 세 법 모두 이득을 보는 쪽은 소액주주, 부담을 지는 쪽은 지배주주로 기록됐다.
- 2025.07.22이사가 충실해야 할 대상에 ‘주주’를 넣고, 독립이사를 3분의 1 이상으로이전까지 이사의 의무는 회사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에 주주가 추가됐다.
- 2025.09.09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독립이사 요건을 강화소수 주주가 표를 모아 이사를 뽑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 2026.03.06회사가 사들인 자기 주식은 1년 안에 소각해야 한다
같은 기간 분기 배당 절차가 정비되고, 공시를 잘못했을 때의 과징금이 올랐다. 불법 공매도 처벌도 강화됐다. 개인투자자 쪽으로 기울어진 조문이 꾸준히 들어왔다.
세금은 1년 만에 방향이 뒤집혔다
세법은 이 2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직접 설계한 영역이다. 그래서 정권 교체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같은 부처가 같은 법을, 정확히 12개월 간격으로 반대 방향으로 고쳤다.
혼인 세액공제 신설
주주환원 세액공제 신설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교육세 구간 신설
고배당 분리과세 신설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뒤쪽 법의 이유에는 “버는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는 원칙에 맞게 정상화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한 가지 더. 가상자산이 조용히 제도 안으로 들어왔다. 2년 동안 열두 개 법이 가상자산을 본문에 적었다. 예금보험공사가 은닉재산을 추적할 때, 국세청이 체납자 재산을 팔 때, 보이스피싱 피해 자산을 되찾을 때 가상자산이 대상에 포함됐고, 거래소에는 대주주 심사가 도입됐다. 별도의 ‘가상자산법’이 아니라 기존 법 열두 곳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편입된 것이다.
학교에서 국가가 편을 바꿨다
가장 자주 고쳐진 법이 무엇인지 세어봤더니 교육법이었다. 초·중등교육법이 9번, 고등교육법이 8번 개정됐다. 그리고 초·중등교육법 9번 중 규칙을 푼 것은 한 건도 없다. 9번 모두 무언가를 더 조였다.
조인 방향이 뚜렷하다. 교사 쪽으로 기울었다.
- 2024.12.20학생 생활지도에 드는 비용을 지원하고, 학교마다 민원 처리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교사 개인이 민원을 혼자 받는 구조를 바꾸려는 조항이다.
- 2025.04.01교사가 학생을 제지하고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을 법률에 명시했다이 법에서 부담을 지는 쪽으로 기록된 것은 보호자다.
- 2025.09.16수업 중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한할 근거를 만들었다여기서 부담을 지는 쪽은 학생이고, 이득을 보는 쪽은 교사와 다른 학생의 학습권으로 적혀 있다.
- 2026.02.19중대한 교권 침해가 있으면 즉시 조치할 근거
- 2026.05.19교권보호위원회에 교사 위원을 20% 이상 넣도록 의무화
- 2026.06.02보호 범위를 비대면 교육활동까지 넓히고, 교육청이 교원보호센터를 직접 설치하도록 했다부담을 지는 쪽이 ‘악성 민원 제기자’로 적혀 있다.
2023년 이후 교사들이 거리로 나온 사건이 이 조문들의 배경이다. 2년에 걸쳐 여섯 번, 다른 법에서 같은 방향으로 갔다. 이런 식으로 한 집단 쪽으로 반복해서 기울어진 사례는 이 2년에 흔하지 않다.
사교육에는 처음으로 금지가 붙었다
사교육은 오랫동안 “대책”의 대상이었지, 금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2년에 성격이 달라진 조항 세 개가 들어왔다.
| 시점 | 금지된 것 |
|---|---|
| 2025.01 | 수능 출제위원은 퇴임 후 3년간 사교육 영리 활동을 할 수 없다 |
| 2026.03 | 유아를 대상으로 한 레벨테스트 금지. 위반하면 영업정지 |
| 2026.04 | 학생부 정보를 영업 목적으로 거래하는 것 금지. 부담을 지는 쪽은 사교육업체 |
네 살 아이에게 시험을 보게 하는 관행에 영업정지가 걸린 것이 이 2년의 일이다.
AI 교과서는 ‘교과서’ 자리에서 내려왔다
2025년 8월, 무엇이 교과서인지를 법률에 직접 정의하는 개정이 통과됐다. 그 결과 AI 디지털교과서는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가 됐다. 교과서와 교육자료는 예산·채택·검정 절차가 다르다. 이 법에서 부담을 지는 쪽으로 기록된 것은 교육부다. 6장에서 본 AI 육성 흐름과 정확히 반대 방향인데, 대상이 다르다. 산업으로서의 AI에는 길을 열고, 교실에 들어오는 AI에는 제동을 걸었다.
돈과 안전, 그리고 새로 들어온 학생들
학자금은 네 차례 완화됐다. 금리 상한을 국채 수익률의 120%에서 110%로, 연체금 한도를 9%에서 5%로 내렸고, 이자 면제 대상을 중위소득 130%까지 넓히면서 “졸업 후 2년”이라는 기간 제한을 없앴다. 비수도권 대학생은 별도로 면제 대상에 추가됐다.
학교 안전에서는 교내 CCTV 설치가 의무가 됐고, 급식은 조리원 1인당 식수 기준이 생기고 위반 업체는 입찰에서 제한된다. 그리고 이주배경 학생을 위한 조문이 처음으로 여러 건 들어왔다 — 통역 지원과 특수외국어 교육센터, 교육비 지원 대상 확대, 그리고 미인가 교육시설에 대한 이행강제금이다.
구조 쪽에서는 두 가지가 컸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재정을 하나로 합치는 영유아특별회계가 신설되면서 기존 유아교육회계가 폐지됐고, 지방대학 기본계획을 세우는 주체가 교육부에서 시·도지사로 넘어갔다.
의사를 설득하는 대신, 국가가 의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2024년의 의료 공백은 이 2년 입법에 깊게 남아 있다. 그런데 국가가 택한 방식은 정원을 몇 명 늘리느냐의 논쟁이 아니었다. 의사를 공급하는 경로 자체를 법으로 새로 깔았다.
- 2024.09.20간호법이 만들어졌다 — 진료지원 업무가 법에 들어갔다의사의 업무 일부를 간호사가 공식적으로 맡는 근거다. 부담을 지는 쪽은 의료기관이다.
- 2025.04.17의료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추계하는 위원회에 법적 근거를 줬다정원을 정치적으로 정하는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 2025.12.23지역의사법이 만들어졌다 — 의무 복무 10년국가가 양성한 의사가 의료취약지에서 10년을 일하도록 했다. 부담을 지는 쪽이 ‘지역의사’ 본인으로 기록돼 있다.
- 2025.12.30전공의 연속 근무를 24시간으로 제한했다수련의 연속성도 보장하도록 했다. 부담을 지는 쪽은 수련병원이다.
- 2026.02.19국립대학병원 소관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옮겼다대학의 부속기관이 아니라 지역 필수의료의 거점으로 취급하겠다는 뜻이다.
- 2026.03.10필수의료 특별법과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돈을 따로 떼어 관리하는 회계를 만들었다.
- 2026.05.26국립의학전문대학원법이 만들어졌다 — 의무 복무 15년국가가 직접 의사를 교육하고 15년을 공공의료에 묶는 구조다.
같은 방향에서 하나 더 있다. 2025년 10월, 문신사법이 만들어져 의사가 아닌 사람의 문신 시술이 합법화됐다. 수십 년간 “의료행위”로 묶여 있던 일이 풀린 것이다. 간호사의 진료지원, 문신사의 시술, 국가가 양성하는 지역의사 — 세 조문의 공통점은 의사 면허 하나에 묶여 있던 권한을 국가가 재배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의료진에게 줄 것도 함께 줬다
2026년 5월, 필수의료 분야의 의료사고에 형사처벌 특례가 도입되고 불가항력 사고에 대한 보상이 확대됐다. 의료진이 형사처벌을 두려워해 필수의료를 떠난다는 지적에 대한 응답이다. 앞의 의무 복무 조항들과 같은 시기에 나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묶는 조항과 보호하는 조항이 한 해에 같이 들어왔다.
환자 쪽에도 처음 생긴 것이 있다
2026년 4월 환자기본법이 만들어졌다. 병원급 의료기관은 환자안전위원회를 두어야 한다. 같은 달 응급의료법에는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응급의료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됐다. 응급의료법은 이 2년에 여섯 번 개정됐고, 여섯 번 모두 조이는 방향이었다 — 전원 조정 권한 확대, 전용 수신전화 의무, 수용 능력 공개, 응급실 폭행 처벌 강화, 야간·휴일 소아진료기관 지정.
그 밖에 약국에는 ‘1약사 1약국’ 원칙이 법에 명시돼 기업형 네트워크 약국이 제한됐고, 코로나19 백신 피해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추정하고 보상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건강보험 자격을 허위로 취득한 사용자에게는 가산금이 4배로 올랐다.
국가는 의료를 “시장에 맡긴 뒤 수가로 조절하는 영역”에서 “인력을 직접 만들고 배치하는 영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방송은 이사 숫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장의 권력 재편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 쪽 얼굴이 하나 더 있다. 방송이다. 그리고 방식이 특이하다. 이사회 정원을 늘렸다.
- 2025.04.22KBS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걷는 방식을 법률에 명시했다부담을 지는 쪽으로 기록된 것은 텔레비전 수상기를 가진 사람이다.
- 2025.08.26KBS 이사를 15명으로 늘리고 편성위원회를 의무화했다
- 2025.09.09EBS 이사를 13명으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13명으로 늘리고 사장 추천 방식을 바꿨다세 법 모두 부담을 지는 쪽이 ‘정치권’으로 적혀 있다. 이사 수를 늘리면 한 정치 세력이 이사회를 장악하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 2025.10.01방송통신위원회를 없애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심의위원장을 탄핵할 수 있는 절차도 함께 들어갔다. 검찰청 폐지와 같은 날 통과된 개편이다.
이 흐름은 1장과 한 몸이다. 같은 2년에 국가는 검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를 없앴고, 두 경우 모두 기관을 새로 만들고 사람을 뽑는 방식을 바꾸는 방법을 썼다. 규칙을 고치는 대신 규칙을 정하는 자리의 구성을 고쳤다.
반대편에는 완화도 있다. IPTV 사업자의 겸영·소유 제한이 폐지되고, 방송채널사용사업은 등록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아 심의가 밀릴 때는 기존 허가를 유효한 것으로 간주하는 조항이 두 번 들어갔다 — 기관 개편 기간에 방송 허가가 멈추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용자 쪽으로는 불법 정보를 더 빨리 차단할 수 있도록 서면 의결 대상이 넓어졌고, 재난방송에 수어 통역이 의무가 됐다.
쓰고 타고 먹는 것마다, 책임질 상대의 이름이 적혔다
앞의 열한 장은 국가와 제도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2년에 가장 많이 늘어난 조문은 사실 일상의 소비 쪽이다. 특징이 하나 있다. 예전처럼 “정부가 관리한다”가 아니라, 누가 책임지는지를 법에 적는다.
확률형 아이템 분쟁에 소송 특례를 만들고 피해구제센터를 뒀다. 해외 게임사는 국내대리인을 두지 않으면 과태료를 낸다.
문을 닫기 14일 전에 통지할 의무가 생겼다. 갑자기 사라지는 헬스장 문제를 겨눈 조항이다.
단통법을 다른 법으로 옮기면서, 제조사의 불공정 행위를 규율 대상에 넣었다.
피해구제를 빠져나가는 면책 요건을 좁히고 운임 정보를 점검하도록 했다.
미신고 숙박업 중개를 금지했다. 민박에는 불법카메라 금지와 성범죄 전력자 배제가 들어갔다.
충전시설 정보를 등록하고 관리 기준을 지킬 의무가 생겼다.
마약류 성분 검사와 실태조사가 의무화됐다. 화장품에는 점자·수어코드 병행 표시가 붙었다.
폐기물을 원료로 썼다는 사실과 그 성분을 공개하도록 했다.
여기에 생활화학제품 사업자의 책무가 신설되고, 온라인 식품 광고를 모니터링해 조치를 요청할 의무가 생겼다. 은행이 서민금융에 내는 출연요율은 1만분의 3에서 1만분의 6 이상으로 올랐다.
접근성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늘었다
대중의 관심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2년 동안 가장 꾸준히 쌓인 갈래가 하나 있다. 장애인 접근성이다. 장애인복지법 계열은 여섯 번 개정되고 여섯 번 모두 조이는 방향이었다.
| 새로 생긴 의무 | 누가 지는가 |
|---|---|
| 보조견 동반 출입을 거부하면 안 된다 (취업제한도 확대) | 출입을 거부한 시설 |
| 전동보장구 충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 공공건물 시설주 |
| 청각장애인용 보청 보조장비를 비치해야 한다 | 공중이용시설 시설주 |
| 재난방송에 수어 통역을 해야 한다 | 방송사업자 |
|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 시·도지사 |
| 발달장애인 학대를 신고할 의무자에 의료기관 종사자를 추가 | 의료기관 종사자 |
여기에 제정법도 둘 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는 법과 장애인 평생교육법이다. 시설에서 지역으로, 학령기에서 평생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장애아동수당은 “줄 수 있다”에서 “주어야 한다”로 바뀌었고, 괴롭힘과 착취가 차별행위에 명시됐다.
국가는 이 2년에 “불편을 개선하겠다”고 쓰는 대신, 불편을 만든 쪽의 이름을 적고 의무를 걸었다.
왜 하필 이런 모양인가
1부의 열두 갈래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검찰과 폭염과 데이터센터와 헬스장 폐업 통지가 한 표에 같이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1,481건 전부에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부담을 지는가”를 적어놓고 보면, 이 흩어진 목록을 만들어내는 규칙이 몇 개 나온다.
법은 부담을 질 상대가 지목될 때만 이빨을 드러낸다
부담 칸을 다 채우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이 조사에서 가장 뜻밖이었다. 절반 이상이 빈칸이었다. 그리고 빈칸인 쪽과 채워진 쪽의 성격이 정반대다.
여덟 배 차이다. 분야가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당이냐 야당이냐도 아니다. 법 조문에 부담질 상대의 이름이 적히는 순간, 법은 거의 예외 없이 조인다. 이름이 없으면 거의 조이지 않는다. 1부의 열두 갈래가 왜 그렇게 생겼는지가 여기서 설명된다 — 체불 사업주, 딥페이크 유포자, 판사와 검사, 지배주주, 송전선로 주변 주민, 악성 민원 제기자, 헬스장 사업자. 전부 이름이 적힌 쪽이다.
그래서 ‘규제를 푼 법 343건’은 규제 완화가 아니다
1,481건 중 규칙을 푼 쪽으로 분류된 법이 343건이다. 숫자만 보면 규제를 풀어주는 국회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343건 가운데 296건이 부담질 상대가 아예 없는 법이다. 민간 사업자에게서 실제로 규제를 걷어낸 것은 세 건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무엇이었나. 읽어보면 이렇다. 파산했거나 후견을 받거나 집행유예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자격을 막아온 조항을 지운 것 15건. 끝나가는 제도의 기한을 연장한 것 32건. 낙인이 되는 낡은 용어를 다른 말로 바꾼 것 19건.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보고’하던 것을 ‘통보’로 바꾼 것 11건.
규모가 큰 것도 있다. 제목에 고칠 법률 수를 아예 박아 넣은 법이 15건 있는데, 이 15건이 한꺼번에 119개 법률을 고쳤다. 「파산선고 등에 따른 결격조항 정비를 위한 21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같은 제목이다.
이게 나쁜 일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파산을 겪은 사람의 자격 제한을 16개 법률과 21개 법률에서 한꺼번에 지운 것은 실제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 다만 “규제를 몇 건 풀었다”는 집계로는 국가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덧붙여 — 법의 이름은 반대로 말한다
법이 된 1,481건 중 제목에 ‘규제’라는 말이 들어간 법은 10건이다. 그런데 본문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의무를 지운 법은 697건이다. 규제는 제목에 쓰이지 않는다. 조문에 들어간다. 반대로 제목에 ‘지원·진흥·육성·촉진’이 붙은 법은 338건인데, 이쪽은 이름과 내용이 일치한다. 실제로 지원한다. 다만 그것은 전체의 23%다.
국가가 이름을 불러준 대상은 1,077종이고, 대부분 한 번뿐이다
이득 칸에 적힌 이름을 모아보니 1,077종이 나왔다. 그리고 그중 940종은 2년 동안 딱 한 번만 등장한다.
그 꼬리를 열어보면 이런 목록이 나온다. 전부 이 2년 사이에 실제로 법이 됐다.
- 문신사문신사법을 만들어, 의사가 아닌 사람의 문신 시술을 합법화했다
- 파산을 겪은 사람16개 법률과 21개 법률에서 자격을 막던 조항을 두 번에 걸쳐 한꺼번에 지웠다
- 학자금 대출자금리 상한을 국채 수익률의 120%에서 110%로, 연체금 한도를 9%에서 5%로 내렸다
- 미숙아와 선천성 이상아통계와 정보를 모아 관리할 근거를 처음 만들었다
-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민 자녀가족관계 등록 특례와 교육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사람국가가 먼저 주고 받아내는 제도를 만들고, 양육비에 한해 공무원연금 압류를 허용했다
- 스토킹 피해자다섯 개 법에 걸쳐 통지·신청권·처벌·보호시설이 들어갔다
- 낚시어선업자전자 승선자명부를 쓰면 종이 사본 보관 의무를 면제했다
- 수중레저 활동자사업자에게 안전관리요원 배치를 의무화했다
- 예술인복지금고와 공제사업 근거, 자녀 돌봄 지원 근거를 만들었다
국가의 방향은 하나의 서사가 아니다. 1,077개의 이름이다.
이 사실은 양쪽으로 읽힌다. 좋은 쪽 — 이름이 지목되기만 하면 국가는 실제로 반응한다. 문신사도, 미숙아의 부모도, 스토킹 피해자도 2년 안에 자기 조문을 얻었다. 나쁜 쪽 — 지목할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3장과 붙여 읽으면 같은 말이다. 이 나라의 입법은 목소리가 도달한 자리에서만 작동한다.
4장에서 집값과 노동시간이 빠져 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부담을 질 상대를 지목해야 하는 문제이고, 이름을 적기가 가장 어려운 문제다.
이 법들을 쓴 것은 정부가 아니다
1부의 법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보면 한 가지가 눈에 걸린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정부 조직을 대개편한 법조차 정부가 낸 것이 아니었다. 국회 위원회가 썼다.
2년 동안 아예 없던 법을 새로 만든 것이 90건이다. 그중 정부가 제출한 것은 0건이다. 산림재난방지법, 군급식기본법, 생명안전기본법, 국방반도체법, 공소청법, 중대범죄수사청법, 여객기 참사 특별법, 산불 특별법, 문신사법 — 전부 의원이 냈거나 위원회가 다시 쓴 것이다.
정부가 낸 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1,481건 중 111건이다. 그런데 그 안을 보면 규칙을 푼 것이 64건이고, 없던 제도를 만든 것은 4건뿐이다. 행정부의 입법 활동은 구조적으로 ‘지우기’에 몰려 있다. 유일한 예외는 세금이다. 세법에서만 정부안 비율이 39%로 평균의 다섯 배이고, 8장에서 본 방향 전환도 거기서 나왔다.
그러면 누가 쓰는가 — 위원회다
실제로 법이 되는 경로는 하나다. 상임위원회가 비슷한 법안 여러 건을 모아 하나로 다시 쓰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이 2년간 860건 나왔고 769건이 법이 됐다. 1,481건의 절반이 넘는다.
의원들이 낸 법안은 19,411건이다. 그중 그 법안이 그 이름 그대로 법이 된 것은 601건이다. 4,024건은 이름은 사라지고 내용만 위원회가 쓴 법에 흡수됐다. 나머지 14,526건은 지금도 답이 없다. 그중 8,166건은 1년이 넘게 그대로다.
그런데 반대당해서 죽은 법안은 거의 없다. 2년 동안 부결 2건, 폐기 4건이 전부다.
국회는 법안에 반대하지 않는다. 답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 의원, 법안 몇 건 발의” 같은 뉴스는 결과가 아니라 재료를 알려주는 것이다. 법을 실제로 쓰는 것은 위원회이고, 그 문서에는 개별 의원의 이름이 남지 않는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정부보다 많은 법을 만들었다
위헌 결정을 이유로 들며 고쳐진 법이 35건이다. 같은 기간 정부가 제출해서 만들어진 새 제도는 0건이었다. 35건이 12개 분야에 흩어져 있다 — 사회복지와 연금, 행정, 사법, 의료, 환경, 교육까지. 특정 영역을 감독하는 게 아니라 입법 전반의 상시 공급원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2장에서 본 친족 사이 재산범죄 규정의 변화도 여기서 나왔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2년치 조문을 다 읽고 나서, 답을 여섯 줄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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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기관을 없애고 다시 만드는 방식으로 권력을 재배치했다
검찰청을 폐지해 수사와 기소를 나눴고, 방송통신위원회를 없애고 새 위원회를 만들었고, 방첩사에서 수사권을 회수했고, 공영방송 이사 정원을 늘렸다. 규칙을 고치는 대신 규칙을 정하는 자리의 구성을 고쳤다. 특별검사법은 아홉 번 만들어지고 확대됐다. 2024년 12월 3일 밤이 2년치 입법의 가장 굵은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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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은 늘었고, 겨냥한 상대는 뚜렷해졌다
없던 죄가 생기고 형량이 올랐다. 대상이 분명하다 — 임금을 주지 않는 사업주, 딥페이크를 만들고 보는 사람, 사기범, 대주주, 법을 왜곡한 판사와 검사, 교사에게 악성 민원을 넣는 사람. 국가는 모호한 규제를 늘린 게 아니라 구체적인 상대를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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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사람을 직접 만들고 배치하기 시작했다
의료가 가장 분명하다. 지역의사에게 10년,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출신에게 15년의 의무 복무를 걸고, 간호사에게 진료지원 업무를 주고, 문신사에게 시술을 허용하고, 국립대병원을 복지부로 옮겼다. 면허 하나에 묶여 있던 권한을 국가가 다시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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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제는 작은 수단으로 번역됐다
인구 감소는 휴가와 수당으로, 기후는 전력망·원자로·데이터센터 건설로, 참사는 사건별 특별법으로 번역됐다. 집값·노동시간·사교육처럼 부담을 질 상대를 지목하기 어려운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사교육에 처음 금지가 붙은 것이 유아 레벨테스트라는 사실이 그 한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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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쪽의 이름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늘었다
뉴스가 거의 다루지 않은 곳에서 가장 일관된 흐름이 나왔다. 장애인 관련 법은 여섯 번 개정돼 여섯 번 모두 조였고, 보조견·충전시설·보청장비·수어방송에 의무를 질 상대의 이름이 붙었다. 이주배경 학생, 스토킹 피해자, 미숙아의 부모, 파산을 겪은 사람에게도 각자의 조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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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국가의 방향은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1,077개의 이름이다
조문에 부담질 상대가 적히면 81%가 조이고, 적히지 않으면 11%만 조인다. 법이 이름을 불러준 대상 1,077종 중 940종은 단 한 번 등장한다. 그리고 이 법들을 쓴 것은 정부가 아니다 — 새로 만든 법 90건 중 정부가 낸 것은 0건이고, 국회 위원회가 다시 쓴 769건과 헌법재판소 결정이 끌어낸 35건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 2년의 국가는 “무엇을 지원하겠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누구를 조일지”를 결정했다.
말은 법의 제목에 있었고, 결정은 조문에 있었다.
이 글이 볼 수 없는 것
- 답을 받지 못한 14,830건. 이 글은 법이 된 것만 읽었다. 발의된 법안의 71%는 반대당한 것이 아니라 답이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국가가 무엇을 무시했는가”는 이 글이 답하지 못한다.
- 예산과 시행령 — 가장 큰 구멍. 이 글의 결론 하나가 “정부는 새 법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디에 있었는가. 예산과 시행령이다. 그리고 둘 다 이 글이 다룬 자료에 없다. 국가가 가는 방향의 절반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
- 법이 통과된 다음. 실제로 시행됐는지, 예산이 붙었는지는 보지 않았다. 참사 특별법 여섯 개가 거의 같은 구조라는 것은 알지만, 그중 몇 개가 실제로 위원회를 꾸리고 지원금을 지급했는지는 모른다. 검찰청 폐지도 시행일이 2026년 10월 2일로, 아직 오지 않았다.
어떻게 읽었나
이 기간에 법으로 확정된 1,481건 전부를 대상으로 했다. 각 법안에는 국회에 제출될 때 “왜 이 법이 필요한가, 무엇을 바꾸는가”를 적은 설명서가 붙는데, 그 설명서를 한 건도 빼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법안마다 이득을 보는 쪽, 부담을 지는 쪽, 규칙을 조이는지 푸는지를 손으로 적었다.
판단이 갈리는 경우에는 주된 효과를 기준으로 하나만 골랐다. 그래서 의무를 새로 만들면서 지원 근거도 함께 만든 법은 ‘조인다’로 분류된다. 또 이 분류는 정책이 좋다 나쁘다를 뜻하지 않는다. 법인세율 인상과 가산세 인상이 똑같이 ‘조인다’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기한 연장이 똑같이 ‘푼다’로 들어간다.
이득과 부담에 적은 이름은 나중에 비슷한 것끼리 묶었다. 경계에 걸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작은 집단의 비율은 참고만 하는 편이 좋다. 다만 이 글이 기대는 가장 큰 차이(81% 대 11%)는 그런 오차보다 훨씬 크다. 본회의는 통과했지만 아직 공포되지 않은 92건은 제외했다.